2014/03/21 10:48

관련한 작은 생각

미국무부 인권보고서(Human Right Report 2013) - 한국편을 소개했다.

사실 저 보고서가 공정한가 아닌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전세계 국가를 상대로 각국의 인권이슈들을 연간 단위로 압축해서 쓰고, 그 가운데서 주요한 법과 제도를 짚고 그 문제점까지 거론해야 하는 보고서다. 매년 발생된 인권 관련 사건들을 다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주마간산이 따로 없다. 

다만 저 보고서의 재미있는 부분은 우리와 달리 어떤 부분에서 '인권에 대한 감각'이 민감하게 반응하느냐, 즉 미국의 기준 나아가서 (서방) 세계의 보편적 기준...그네들이 중시하는 기준을 생각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러한 남의 기준을 참조하는 것은 한국이 기본권을 실질적으로 보호하여 온 지난 20여년간 이쪽 분야에서 효과적인 발전 방향이었다. 

국가보안법의 경우 그 과도한 형량도 문제가 있지만 (잠입탈출죄의 경우가 그렇다) 사실 인권이슈의 핵심은 찬양고무죄이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일반적인 기준은 "거의 무제한의 허용"인 것이다. 반국가적이라거나 적국을 찬양한다는 이유로 형사처벌하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기준 미달일 가능성이 높다. 이 이슈는 냉전 기간 소련과의 관계에서 미국이 내내 겪었던 불편함이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절대적 보호를 쉽게 철회하지 않은 부분이기도 하다. 거슬러 올라가면 매카시 상원의원 사건에도 올라가지만, 상징적으로 미국은 비미활동위원회를 1975년에 폐지한다. 
 이와 관련하여 여전히 남이 있는 문제는 강경한 반미발언, 특히 국기를 불태우는 것의 문제다. 이것도 표현의 자유로서 보호받기 때문에 애국 정치인들이 궁극적인 해결책이라며 국기 소각 처벌조항을 헌법에 넣자는 주장을 10년이 넘게 되풀이하고 있다. 사실 반대로 말하자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기 위해서 개헌을 하지 않으면 답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만큼 이 기본권은 미국에서 중시된다.

여기서 또 다른 이슈가 나온다.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가 그토록 중시된다면 한국에서 명예훼손을 형법적으로 처벌하는 것은 미국 기준에서 지나친 국가 개입이라는 것이다. 또한 방송의 내용에 따라 국가가 '허가권을 쥐고 있으니까' 벌점을 주니 마니하는 것도 그쪽 기준에서는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된다. 출입기자단 제도도 마찬가지다. 박정근 사건 등도 '기소 자체가' 이미 하나의 시민적 자유의 침해라고 보는 사고방식에서는 뻘기소가 충분히 인권침해의 사유가 된다. 추후에 무죄를 받았든 어쨌든 구치되고, 조사받고, 재판에 참석하고, (어쩌면 자신의 비용으로) 변호사를 고용하는게 개인의 입장에서는 괴롭기 때문이다. 
 이를 넓게 보자면 조현오 사건도 해당이 된다. 분명히 허위사실을 적시하여 사자와 유가족의 명예를 훼손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이를 굳이 범죄로 처벌해야 하는가? 피해를 본 사람들이 민사소송으로 구제받으면 안되는 것인가?

결사의 자유와 노동권에서 문제된 많은 이슈들은 노동조합 관련 제도들이다. 이것도 미국 기준에서는 정부의 개입이 상당히 많다. 특히 단체교섭을 위반하면 양쪽을 형사처벌하는 것이나, 노동조합의 자격 여부를 국가가 결정하는 것, 노동 3권의 행사에서 법절차적인 규정이 세세하게 마련되어 있는 것은 그쪽 감각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사실 쟁의나 단체교섭은 사적자치 하에서 양자간에 이루어지는 문제인데, 한국은 파업이 길어져도 그렇고 부당해고가 있어도 그렇고 정부가 적극적으로 자주 개입한다. 이 부분은 열우, 선악을 적용할 수 없고 단지 사적자치에 대한 가치관의 문제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정부가 개입하는 것이 반드시 어느 한 쪽에 유리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쟁의가 정치 문제가 되지 않는 경우, 국가의 개입을 통해 간섭하는 법제도 덕분에 쟁의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는 사업장도 많다. (정치 문제가 되면 이제 이런 개입이 노조에게 칼날이 되어 돌아오기도 하지만)

결국 국가의 개입에 대한 우려와 비범죄화(형사처벌할 필요가 없는데도 처벌조항이 있는 것)가 인권문제에 있어서 자주 거론되는 '가치관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태평양만큼 넓은 갭이 놓여져 있으나, 근래 한국의 스탠다드가 급속히 미국화되는 것도 사실이니 향후 어찌 될지 알 수 없다.

이주노동자, 소수민족, 여성, 성적소수자는 저 보고서의 많은 부분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이슈다. 사실 한국에서 중시되는 인권 문제는 여전히 정치적 권리에 관한 부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저쪽에서는 마이너리티 차별을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성적소수자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고, HIV 보인자 차별이라는 이슈가 있다는게 생경하게 느껴지지만 저쪽에서는 이런 문제들은 겪었거나 겪고 있기 때문에 많이 언급한다고 생각한다. 즉 감각이 다르다.

반면에 이 보고서는 사형제에 관해서는 한 마디의 언급도 없다. 국제적인 인권 기준이 어떠한지 생각해보면 위선적이라고 할 정도로 미국 스탠다드에 충실하다. 또한 낙태도 직접적으로 언급되어 있지 않다. 동성결혼에 대해서는 오히려 한국의 성소수자 차별 문제에 대한 이슈 제기을 죽 언급하면서 "아 그런데 이게 동성결혼을 옹호하는 취지인건 아님"이라고 변명을 하는 뉘앙스다. 그만큼 미국의 관점 하에 작성된 보고서다. (사실 한국인보다 미국인이 더 많이 읽을 것이고, 만에 하나 트집이 잡혔을 때 국무부를 괴롭힐 수 있는 것도 미국의 의회다)

끝으로 사법부의 판단(법원, 헌재)이 국제적 기준에서 인권문제에 관한 최종적인 결론이라고 할 수는 없다. 특히 헌법재판이 그러한데 기본권을 보장하는 현행 헌법에 따라 법률과 공권력 행사를 사법심사하기 때문에 이 기관의 판단이 합헌적이라면 인권 문제는 치유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헌법이 모든 이슈에 관한 기준을 담고 있지 못하며 (사형제 같은 것) 또한 헌법 자체가 인권침해적인 부분 (위의 국기소각 문제에서도 말했지만, 한국헌법에도 군인 군무원 배상권 제한이 들어 있다)을 강화하기도 한다. 사실 많은 권위주의 국가에서 사법부의 판단은 독재적 인권침해를 옹호하는 권력의 시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해보자. 우리 사법부가 "이건 합법, 합헌"이라고 한다고 남들도 그것을 문제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덧글

  • SM6 2014/03/21 20:35 # 답글

    공정하든 아니든 남한 바깥에서 저 정도의 심층적 이해가 반영된 자료는 흔치 않은 현실에서 하나의 대조점으로서 충분히 의의가 있다고 봅니다.
    개인적으로는 (아마 상당히 공치사가 섞여있겠지만) 솔직히 꽤 관대하게 봐주고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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