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5/16 16:47

북한의 친일파 초대내각 리스트에 관하여 사고 정리 상자

일반적으로 세간에 통용되는 "북한 공산정권은 해방 초기 친일파 척결을 혹독하게 수행했고(다수의 친일파가 자본가, 부농 등 반동집단이었으므로 자연스럽게 타당성에 수긍할 수 있었다), 반면에 남한은 그러한 친일 청산에 실패했다"라는 역사적 평가가 있다. 민문연이 제작한 100년 전쟁이라는 유명한 UCC만 봐도 그렇고, 남의 "친일 청산 실패"와 북의 "친일 청산 성공"(그 동기야 어쨌건)은 대조되는 신화로서 오랫동안 회자되고 있다.

그런데 당연히 이런 기존의 통념에 이의를 제기하는 견해도 있다. 특히 정치적인 이유에서 (주로 좌파에서 대한민국 정통성에 대한 비판이 나오는 것을 벙어하기 위해) 북한의 초창기 역시 친일파에 의해서 오염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한 견해 전반을 반박하는 것은 역사가의 몫으로 남겨놓자. 사실 정치적 부담감 때문에 그런 일을 하려면 꽤나 용기가 필요할 것 같다. 요즘엔 추행을 당해도 종북이라던데.

다만 인터넷에 돌고 있는 명단의 팩트 검증은 해봄직 한 것 같다. 북한 김일성 내각의 친일파 현황이라는 리스트가 돌고 있다. 추적해보면 http://thinkdifferent.tistory.com/3705라는 사이트에서 처음으로 게재된 것까지 확인했다. (더 올라갈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 블로거가 무슨 정치적으로 악의적인 목적에서 이런 리스트를 썼다고 혹은 인용했다고 의심하지는 않는다. 다만 퍼날라지는 동기는 당연히 좌파적 통념에 대한 반증이 목적일 것이라고 생각된다.

김영주 - 북한 부주석, 북한내 당시 서열 2위, 김일성 동생 (일제 헌병 보조원)
장헌근 - 북한 임시 인민위원회 사법부장, 당시 서열 10위 (일제 중추원 참의) ← 친일인명사전에 등재
강양욱 - 북한 인민위원회 상임위원장, 당시 서열 11위 (일제하 도의원)
이승엽 - 남조선 노동당 서열 2위 (친일단체 야마토숙 출신, 일제 식량수탈기관 식량영단 이사)
정국은 - 북한 문화선전성 부부상 (아사히신문 서울지국 기자, 친일밀정)
김정제 - 북한 보위성 부상 (일제하 양주군수)
조일명 - 북한 문화선전성 부상 (친일단체 야마토숙 출신, 학도병 지원유세 주도)
홍명희 - 북한 부수상 (일제 임전대책협의회 가입 활동)
이활 - 북한 인민군 초대공군 사령관 (일제 일본군 나고야 항공학교 정예 출신)
허민국 - 북한 인민군 9사단장 (일제 일본군 나고야 항공학교 정예 출신)
강치우 - 북한 인민군 기술 부사단장 (일제 일본군 나고야 항공학교 정예 출신)
최승희 - (일제하 친일단체 예술인 총연맹 회원)
김달삼 - 조선 노동당 4·3사건 주동자 (일제 소위)
박팔양 - 북한 노동신문 창간발기인, 로동신문 편집부장 (친일기관지 만선일보 편집부장, 문화부장)
한낙규 - 북한 김일성대 교수 (일제하 검찰총장)
정준택 - 북한 행정10국 산업국장 (일제하 광산지배인 출신, 일본군 복무)
한희진 - 북한 임시인민위원회 교통국장 (일제 함흥철도 국장)

이 명단에 기록된 인물들이 ① 북한의 초대 내각에 소속된 인물인가, ② 친일파로 평가받을 수 있는가, ③ 친일파였다면 어떻게 초기 북한에서 출세할 수 있었는가를 검증해보자. 특히 ②번은 중요한 바, 정치적 목적에서 사소한 꼬투리를 잡아 누구에게나 친일파 딱지를 붙이는 후세의 억지를 차단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창씨개명을 했으니 윤동주는 친일파야?) 물론 ①번에서 탈락하는 인물들도 다수 나온다.

1. 김영주

 김영주는 김일성 동생이 맞지만, 초대 내각은 물론이고 상당 기간 북한 정치지평에서 보이지 않았던 인물이다. 해방 후 소련점령기, 최초의 단독정권이라고 할 수 있는 북조선인민위원회 시기, 이후 1948년 10월 10일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건시에도 드러나지 않는 인물이다. 이 시기는 스탈린주의의 변용인 김일성 유일체계나 신격화 이전이다. 또한 서열 2위 역시 (다소 불확실하지만)허가이, 김책, 김두봉, 박헌영 등 여러 거물들이나 가능한 평가지, 새파랗게 어린 김영주는 명함도 못 내놓을 시기다. (1922년생이다) 
 북한에 국가주석직이 도입된 것은 유명한 1972년 최고인민회의 5기 1차대회에서 채택된 사회주의 헌법의 결과물이다. (김일성 우상화를 연구하는데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따라서 건국 당시 북한에는 부주석이라는 직위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김영주의 부상은 김일성 우상화와 김일성 일가의 우상화에 따른 결과이며, 60년대 이후에서나 가능했던 일이다. (물론 형이 북한 내 서열1위였으니 그 전에도 탄압받고 그러진 않았을 것이다) 70년대 정무원 부총리를 지낸 것이 사실상 커리어의 정점이었으나 (물론 정무원 부총리가 서열 2위인 것도 아니다. 오히려 한직에 가깝다. 노동당 조직지도부장 시절이 실력으로서는 정점이 아니었을까?), 이후 "중앙당 지도부" (즉 김정일)가 후계자 구도에서 키워지면서 자연히 반 은퇴상태로 밀려난다. 국내에서는 1972년 7.4 남북회담 시기에 이후락의 카운터 파트이자 김일성 동생으로 알려지면서 엄청나게 주목 받았지만, 이미 이 시기에 김영주는 서서히 내려가는 상황(결국 노동당에서는 밀려난다)이었고 북한 내 거물이기는 했지만 서열 2위라고 평가할 수는 없는 위치였다. 뜬금없이 1993년에 정치국원으로 복귀하여 부주석까지 올랐으나 큰 의미는 없었고, 오히려 김정일이 자신의 후계구도가 확정된 상황에서 라이벌이었던 삼촌을 챙겨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부주석이라고 해봐야 서열은 7~10위 정도였고 명예직 느낌이 강했다.
 끝으로 김영주의 해방전 친일전력은 매우 불투명하다. 헌병 보조원이라든가, 관동군 통역이라든가 하는 이야기가 있는데, 근거는 확인한 바 없다. 북한 쪽이야 깨끗하게 정리해놓았을 거고, 그런 소소한 친일 행각에는 크로스체크할 수 없는 증언 정도 말고는 딱히 근거가 있을까? 1922년생인 김영주는 해방때 24세였을 것이다. 그런데 형의 후광으로 1945년에 모스크바 대학을 졸업한다. 김일성이 88독립여단에 들어가서 소련군 장교가 된 것이 1940년이었으니, 1940~1945년 시기에 입학했을 가능성이 높다. 즉, 친일파 노릇을 했다고 쳐도 1930년대 후반기에나 가능했을까? 10대 후반의 통역, 헌병 보조원이라는게 석연치 않다. 

2. 장헌근

 일단 북조선인민위원회와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 1947년 수립된 북위는 이듬해 북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으로 연결되는 북한 단일정부의 초석이 되는 기구였으며, 그 핵심인물이 건국 북조선의 핵심이 되었다. (이후 권력투쟁과정에서 상당수 숙청된다.) 반면에 1946년 수립된 북임위는 미군정처럼 노골적인 군정을 피하려고 했던 소련군의 의향에 따라 로마녠코가 조직한 임시 기구로서, 미군정 하의 과도입법의원에 비견할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북임위는 노동당이 주관하는 북위에 비하여 좀더 전 조선민족을 아우르는 성향이 강했다. (북임위->북위->인공으로 이어지면서 계급적 불순분자나 공산주의자가 아닌 세력은 차츰 제거되어 나간다. 친일행적 심사가 체계화되어 처리된 것도 이런 루트를 따른다.)
 북임인위는 그다지 체계적인 조직이 아니었는데, 소군정을 배경으로 기존에 인정되고 있던 각 지방의 "인민위원회" (조만식도 이런 곳에 발을 걸치고 있었다)에 대응하여 평양에 일종의 중앙 인민위원회로서 임시적으로 만들어진 조직이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소련에서 내려오는 여러가지 이념과 요구를 중앙에서 조선인의 정치적 요청인 것처럼 발표하고, 이로서 각 지방의 인민위원회에서 일관된 개혁을 하도록 유도하는 연결고리에 가까웠다. 그리고 찬반탁 논쟁으로 하부 조선인 기구인 각 지역 "인민위원회" 내에서 소련에 대한 찬반이 갈렸기 때문에, 이를 중앙에서 강력하게 지도해야할 필요성이 대두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는 향후 남북 통일정부 수립시 친소련파 지분에도 영향을 줄 것이었다. 북한 내 정파가 100% 친소라면 여기에 남로당을 추가하여 향후 통일정부의 지분 과반수는 친소, 공산쪽이 차지하게 되리라는 계산이다.) 어쨌든 북임인위의 결성으로 북한은 토지개혁 등 몇 가지 중대한 조치를 전 북조선 단위에서 이뤄내고 성공리에 북조선인민위원회로 이행하게 된다. (사실 북임인위의 결성 목적 및 성과에 대해서는 워낙 많은 의견이 대두되니 여기서 다 소개할 수조차 없다. 남북 중 어느 쪽에 단정 책임이 있느냐를 따지는데 핵심적인 부분이라서 더욱 그렇다.)

 북임인위 자체가 연결고리적인 기관이었다는건 그 조직에서도 드러난다. 기존 소군정의 행정 10국(산업, 농림, 사법, 보안, 교통, 상업, 체신, 재정, 교육, 보건)에 기획, 선전, 노동, 총무라는 4개 부서가 추가된 형태이기 때문이다. 추가된 4부서는 북임인위에 좀더 공산당의 색채가 가미되었음을 (조직, 선전, 노동, 정무라고 생각하면 모두 노동당의 핵심 권력부서다) 의미한다.
 인적구성에 있어서도 행정 10국 시절보다 공산당의 색채가 강화된다. 행정 10국 당시에는 공산당이 소수였는데 1946년 북조선 공산당은 아직 원래 원조였던 조선 공산당과 결별 상태였고, 그 조직이나 규모도 미약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소련이 북조선 공산당을 혁명적으로 밀어준다면 모르겠으나, 아직 이 시기에 소련은 강대한 조선 공산당(후의 남로당)에 대해서도 이해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사실 이 시기에 북한의 정당 상황이 매우 혼란스러웠고, 소련의 지시와 달리 김일성이 조선 공산당 북조선 분국에 반발하여 독립적인 북조선 공산당을 주창하고 이를 소군정이 눈감아 주면서 모든 거물들이 정당을 들고 나선 상황이었다. 이는 노동자당 일당체제, 1국1당주의 등 레닌주의의 당이론에 어긋나는 것이기도 하다. 조만식이 지도하던 조선 민주당이나, 김두봉이 들고 나온 북조선 신민당이 소군정의 의향에 따라 행정 10국 및 북임인위에 가담하였다. (이후 조선 민주당은 최용건이 들어가서 민족주의자들을 배격하고 사실상 공산당의 위성정당으로 전락한다. 이 정당은 지금도 노동당 우당으로 남아 있다. 북조선 신민당은 북조선 공산당과 합당하여 북로당을 결성한다.)
 북임인위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위원장: 김일성 (북조선 공산당, 이하 공산)
부위원장: 김두봉 (북조선 신민당 전신인 독립동맹)
서기: 강양욱 (조선 민주당, 이하 조민)
산업국장: 이문환
교통국장: 한희진 -> 허남회
농림국장: 이순근 (공산)
상업국장: 한동찬 -> 장시우 - 1946. 9에 한동찬의 망명으로 장시우 임명
체신국장: 조영열 (공산)
재정국장: 이봉수 (공산)
교육국장: 장종식 (공산)
보건국장: 윤기영 (조민)
사법국장: 최용달 (공산)
보안국장: 최용건 (조민)
기획부장: 정진태 (공산)
선전부장: 오기섭 (공산) -> 이청원 (공산)
노동부장: 오기섭 (공산) - 1946. 9에 노동부가 신설되면서 선전부장에서 이동
총무부장: 이주연 (공산)

이 중에 해방 전 행적이 의심스러운 인물은 기껏해야 강양욱, 이문환, 한희진, 한동찬 정도다. 그러나 강양욱은 친일파보다는 조선 민주당 우파로서 기독교 계열이라는 딱지가 붙은 인물이다. 그런데 김일성의 외종조부라는게 함정. 테크노크라트로 중용된 인물은 이문환, 한희진, 윤기영, 한동찬인데 그나마 윤기영은 의학박사, 한동찬은 치과의사 출신이다. 이문환은 친일파라기 보다는 지주계급이라는 부분이 문제였고, 결국 일제시대 고위직을 지낸 인물은 한희진 정도다. (함흥철도국장) 어쨌든 해방 이후 고급인력 기근은 북한은 물론, 북중국, 소련(의 동쪽 변경) 등에 만성적으로 나타난 현상으로 심지어 패전 일본인 가운데서도 억류나 회유를 통해 기술자들을 확보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났다. 
 장헌근은 1938년 중추원참의를 받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보시다시피 위 명단에 이름이 없을뿐만 아니라, 북임인위 중앙위원에도 이름이 없다. 어쩌면 중앙위원 중 노동조합 계열로 들어온 강영근이라는 인물과 혼동했을 가능성도 생각해볼 수 있다. 장헌근은 대표적인 친일경찰로서 테크노크라트도 아니고, 공산계열에서는 가장 혐오시되는 타입의 친일파일 뿐만 아니라 연령적으로도 1946년이면 66세로 적지 않은 나이다. 더구나 사법부장이라는 직책은 존재하지도 않고 사법국장은 요직 중의 요직으로 비공산계열에 맡길 직책도 아니다. 실제로 북임인위는 물론 북인위에서도 최용달은 유임되었다. 
 위키피디아 등에 장헌근을 북임인위나 북인위에서 사법부장 혹은 사법국장으로 설명하고, 해방 후 북조선에서 높은 서열의 고위직이었다고 서술하는 내용이 인터넷에서 발견되고 있으나 그 근거를 찾을 수 없다. 참고로 중추원참의를 지낸 장헌근(張憲根)은 총독부 지방관으로 여러 직위를 거쳐서 군수에 올랐던 인물이다. 창씨명은 張間憲四郎.

3. 강양욱

 유명한 인물이니 간단히 설명하자면 평양 출신의 목사로 조선 민주당에서도 우파에 가까운 인물이다. (조만식부터가 그런 인물이지만 조선 민주당이 평안도 개신교 정서를 강하게 반영하는 우파 정당이었다. 물론 우파 당원들은 후에 줄줄이 월남한다. 이들이나 그 후신이 이후 남북갈등 과정에서 서청 등 백색테러 집단이 되거나, 지금도 끈질기게 남아있는 반공 기독교 정파의 원류가 된다) 사실 성분을 보자면 숙청되거나, 월남하여 강력한 반공 목사가 되었어야 할 인물이다. (종파도 장로교다!) 그런데 강양욱 목사의 육촌형제가 누구냐 강돈욱, 즉 김일성의 외할아버지다. 그리고 창신학교 시절 김일성의 담임선생이기도 했다. 그 결과 북한에서도 계속 호의호식했다. (부주석 역임)
 강양욱은 공산당 입장에서 보면 매우 성분이 나쁜 인물이다. 당적도 북로당이 아니라 우당인 사회 민주당에 있었다. 그러나 친일 행적이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인터넷 자료를 보면 일제하 도의원을 역임했다고 나와있는데, 민선 도의원이 과연 친일파를 가르는 기준이 될 수 있는지는 둘째치고 (사실 유지들이 많이 출마했고, 친일파가 많긴 했다) 강양욱이 도의원을 지낸 기록이 없다. 
 해방 전에 주 활동 무대가 평양이었는데, 평안남도 도평의원, 도의원 중에 강(康)씨는 중추원 참의를 지낸 1924년 민선 도평의원 강병옥(康秉鈺), 1933년 민선 도의원 강원건(康元健)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뉴스 라이브러리를 돌려봐도 강양욱(康良煜)의 해방 전 행적은 진남포체육회에서 임원직을 맡은 것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진남포체육회는 그냥 민간단체) 애초에 도의원씩이나 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닌 것이다.
 
4. 이승엽

 이 명단에서 빠지지 않는 거물인데, 해방 전후 공산주의자로 꼽으면 손꼽히는 거물이다. 친일파로 분류된 것이 당황스러울 정도다. 악질 진성 빨갱이라고 하는 쪽이 알맞다. 박헌영과 비슷한 셈이다. 대화숙이 뭔지 잘 이해하지 못해서 일어난 착오라고 여겨지는데, 대화숙은 보도연맹과 비슷한 성격의 단체다. (애초에 보도연맹 자체가 대화숙에서 힌트를 얻어 만들어졌을 개연성이 높다) 이름이 올라갔다는 이유로 치면 여운형도 친일파가 되어 버린다. 1930~1940년대 사상범으로 전과 경력이 있으면 죄다 대화숙에 소속이 되는 시스템 때문이다. 사상범으로 수감되어 전향서를 쓰면 친일파라면, 결국 일제시대 내내 옥살이를 하지 않은 모든 국내 활동가를 친일파로 모는 셈이 된다. 하기야 정치적으로 마음에 안들면 윤동주도 창씨개명했다고 친일파라고 하더라만.

5. 정국은

 해방 전 아사히신문 서울지국의 기자였고, 해방 후 남로당에 가입하여 기관지 "국제신문"의 편집국장을 지냈으나 반민특위에 체포되었다. 병보석으로 석방 후 국방신문, 연합신문사 등의 편집국장 및 종군기자로 활동하였다. 1953년 간첩 혐의로 체포되어 1954년 총살당한다. 말하자면 해방 전에는 친일파(그러나 1919년생 조선인으로서 아사히신문 기자를 했다는 것으로 친일파가 된 부분은 조금 동정한다), 해방 후에는 북한 간첩. 사실 반민특위가 정국은을 (약관 31세로 편집국장이었다) 체포했을 때도 놀랍다는 반응이 많았다. 급수로는 거기 들어갈만한 거물이 아니었고 그냥 평기자였으나, 역시 언론인이나 문예계는 기록이 남으니 처벌도 무겁다.
 그러나 이런 인물이 이 리스트에서는 느닷없이 북한 문화선전성 부부상으로 등장한다. 황당한 일이다. 또한 부상(副相)도 아닌 부부상은 무슨 직책인지도 모르겠다. 인민무력부처럼 기관장이 부장(部長)이라면 부부장(副部長) 같은 직위가 있을 법도 하지만, 문화선전성 같은 경우 장은 문화선전상이며 한국의 차관에 해당하는 직제가 부상(副相)이다. 애초에 30대 초반의 남한에서 활동하는 일개 간첩이 차관이라는게 말이 되나?
 참고로 초대 문화선전상은 연안파 허정숙이었고, 초대 부상은 소련파 기석복이었으며 (초대 인민공화국 내각 자체가 조선인 계열 장관과 조선계 소련인 계열 차관의 파트너쉽이었다.) 이후 정률등이 역임했다. (기석복이 퇴임하기도 전에 정국은은 처형되었다) 

6. 김정제

 보위성, 민족보위성은 인민부력부의 전신이며 한국의 국방부의 카운터파트가 되는 부서다. 하지만 알만한 분들은 다 알다시피 북한에서 이 기관은 당, 군, 정 3축의 핵심이며 가장 중요한 통치기관 중 하나다. 초대 민족보위상은 초거물 최용건이었다. 이 기관의 특질만 봐도 알겠지만, 부상이라고 해도 보통 요직이 아니며 당연히 군인들이 차지하는 직위다. 양주군수 출신이?
 민족보위성 초대 부상은 강건이다. 인공 창건시 김일성의 핵심 측근이며 인민군 총참모장을 겸임했다. 지금도 북한에서는 영웅시되는 인물이다. 숙청에 휘말리지 않았던 것은 당연히 한국전쟁 때 사망했기 때문에. 참고로 강건의 관을 맨 사람이 박헌영, 김일성이다. 
 반면에 김정제라는 인물은 누구인지 알 수가 없다. 해방 전 양주군수 조선인 역임자를 보면 홍종국, 송문화, 조기행이었고 해방 후 김종규, 서병익 등이 역임하였다. 김정제간첩사건의 주범 김정제가 해방 직전 4년간 양주군수를 역임했다는 주장도 있으나, 1945년 김정제의 나이는 33세였고 아무리 생각해도 양주군수를 역임하기에는 연령적으로 이르다. 1957년 세간을 떠들썩하게 하고 사형당한 김정제는 (아마 일제시대 경찰 출신으로) 경무국장을 역임하고 국회의원에도 출마 예정이었던 30대 후반의 거물 인사였으며, 그가 간첩혐의로 체포당하자 자유당 쪽에서 김정제와 친분을 가졌던 인사들이 심한 공격을 받았던 일이 있다.
 정국은과 비슷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이 리스트를 만든 사람이 50년대 유명했던 간첩 이름을 아무거나 가져와서 말도 안되는 직위를 붙여놓은 셈이다. 

7. 조일명

 정국은에서 문화선전성 부부상이라는 직제가 이상하다고 밝힌 바 있다. 문화선전성 부상이라는 직제는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초대 부상은 소련파 기석복이었으며, 2대 부상도 소련파 정률이 맡았다. 조선인 성상+소련파(조선계 소련인) 부상의 콤비는 소련파 숙청시까지 대충 유지되었으며, 남로당계 조일명이 문화선전성 부상을 지냈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조일명 자체가 일제시대 전향 경력과 일본 유학을 갔다올 정도로 유산계급 출신이라는 성분 등으로 심하게 공격을 받았으며, 하필이면 계열도 남로당이었다. (정판사 사건 연루자다) 결국 박헌영 숙청 당시 같이 떨려나갔고 1953년에 사형선고를 받는다. 이 시기에 문화선전성 부상은 초대 부상인 기석복이 잘 하고 있었다.

8. 홍명희

 내각 부수상을 역임한 해방 전 조선 최고의 소설가 벽초 홍명희는 맞다. 그렇다면 홍명희는 친일파인가? 홍명희의 조부인 홍승목은 친일파가 맞다. 그런데 부 홍범식은 경술국치에 항거하여 자결한 인물이다. 그리고 홍명희에 대해서 친일파라고 하는 주장은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일단 임전대책협의회에서 홍명희가 활동한 사실부터 좀 보여줬으면 좋겠다. 아니 일단 해방 후에 홍명희의 평가는 독립운동가 쪽 아니었나 --?


다른 인물들에 대해서도 좀더 시간을 들여서 검토해야 할 필요가 있지만 시간과 예산이 부족하다. 그러므로 소결을 내리자.

사실 이 명단 중에는 친일파로 볼 수 있는 인물도 약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명단은 김일성 초대 내각(즉 인공의 초대 내각)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인물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문제다. 한국전쟁 직전에 사살당한 빨치산 김달삼, 안막과 함께 1950년이 되자 사라진 무용가 최승희는 내각이랑 무슨 상관이 있는 인물인가? 그리고 허위 경력이나 전혀 엉뚱한 이름을 붙여놓은 것도 매우 수상하다. 간첩 사건으로 40~50년대 유명했던 정국은, 김정제, 조일명 등을 써놓았지만, 해당 인물들은 경력도 맞지 않고 북한에 가서 출세할 상황도 아닌 인물들이었다. 남한에서 간첩활동하면서 북한 차관을 겸임했나?

위 리스트에서 사실과 일치하는 것(친일경력이 있고, 내각에 포함시킬 수 있는 직위를, 김일성 초대내각 당시에 역임)은 한희진, 정준택 정도이며 그나마 한희진은 북임인위 시절에 숙청되어 버린 것으로 보인다. 박팔양은 기자이자 시인으로 만선일보에서 편집국 차장을 지낸 경력이 있다. 고위직이라고 보기 어려운 것은 둘째치고 만선일보에서 어떤 글을 썼는지도 확실하지 않아서 결국 민문연 친일파 선정시에도 보류된 인물이다. 월북 후 시인 활동을 계속한 부분은 사실이고 기자로 활동했을 개연성도 있겠지만, 노동신문을 창간했는지는 불명확하다. 공식적으로 노동신문의 창간인으로 북한이 주장하는 인물은 당연히 김일성-_-이니까. 아니 그리고 일단 노동신문 편집부장이 김일성 내각이랑 무슨 상관이 있는데? 

 한낙규라는 인물은 추적도 안되지만, 일제하 검찰총장은 무슨 직위를 말하는 것일까? 당시에는 검찰총장이라는 말도 없었으며 검사총장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일제하 검사총장의 직을 조선인이 했을리도 없고, 조선에 따로 검사총장을 두지도 않았기 때문에 말이 안된다. (각 지역재판소 검사국 검사정이 조선 내 검사의 최고직위가 아니었을까? 조선인 검사정이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참고로 최초의 조선인 검사총장은 미군정 당시 임명된 김찬영이다.

 그 밖에 공군 조종사 관련으로 출세한 이활이나 허민국, 강치우도 내각과는 큰 연관성이 없는 인물이다. 이른바 직업군인이라는건데, 솔직히 남북간 창군 당시 군내 친일파 비교는 안하는게 도움이 되지 싶다. 이활도 해방 전 나고야 비행학교 출신의 민간 파일럿으로 한국군 4대 공군참모총장인 장덕창 정도의 인물이다. 장덕창을 친일파라고 할 수는 없는게 아닌가. 한국 공군 군번 1호라는 김정렬 장군도 있는 마당에. 그나마 이활은 실존 인물이기라도 하니 다행이다. 
 인민군 9사단장이라는 허민국도 이해가 안되는 인물이다. 한국전쟁 개전시까지 인민군에 9사단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개전시 인민군 1군단은 1, 3, 4, 6, 13, 15사단 및 105 땅크여단과 1개 포병연대, 인민군 2군단은 2, 5, 12 사단 및 모터찌클 연대, 기타 경비여단 및 육전대대와 교도대 정도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10, 13, 15사단은 민청훈련조직을 사단화 편제한 것으로 예비제대에 가까웠고, 12사단은 7사단이라고 했다는 설이 나뉘기는 하지만, 확실히 9사단은 한국전쟁 때는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은 존재하는가?) 그렇다면 창군 당시 9사단장 허민국이라는 인물은 누구인가? 알 길이 없다.
 강치우 역시 누군지 알 수 없다. 기술 부사단장이라는 직위는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실존 인물인가? 

 결국 저 위의 리스트는 ⓐ 실존 여부가 불명한 인물도 많고, ⓑ 실제 친일행적에 대한 사실 파악도 불확실하고, ⓒ 직위나 직책을 심각하게 잘못 연결하고 있으며, ⓓ 그나마도 상당수는 김일성 초대 내각, 즉 인공 창건 당시 북한 내각의 구성원과 전혀 무관한 인물들을 늘어놓고 있다. 이것으로 북한의 초대 정권이 친일파라고 할 수 있을까? 내가 보기에는 망신 당하기 딱 좋은 물건이라고 여겨진다. 어찌나 어처구니가 없는지 이 리스트의 목적이 이런 구멍투성이 리스트를 유포함으로써 나중에 우파들의 망신을 유도하기위한 종북들의 낚시라는 생각이 들 정도니까. 이미 이 리스트를 인용하여 기사를 쓴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덧글

  • 2013/05/16 17:09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措大 2013/05/16 17:22 #

    1940년 이후부터 종전시까지 아사히 신문은 대동아전쟁이나 국수주의 선전에 크게 부역한 것이 사실입니다. 사실 아사히 신문 제호에도 그 흔적이 (욱일문양) 남아있지요. 물론 애초에 그 문양이 군국주의적인 것은 아니었고, 고유의 문양이기는 했지만 말이죠.

    지금이야 상당히 리버럴한 축에 들어가는 신문으로 바뀌었죠. 우익 추방-레드 퍼지를 거치면서 논조가 일신한 언론사들이 꽤 되는거 같습니다. 한국도 뭐 경향이라든가...

    대동아전쟁비사에도 아사히 신문 특파원들이 쓴 종군수기가 많이 실려 있습니다.
  • 슈타인호프 2013/05/16 17:30 # 답글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 9사단은 존재했습니다. 다만 개전시 바로 투입된 일선 사단이 아니었고 나중에 투입된 2선급 사단이었을 걸요 아마. 부대를 편성한 원 주둔지가 황해도 사리원 일대였을 겁니다.
  • 措大 2013/05/16 17:34 #

    군사사에 박식하시니 여쭙겠는데, 허민국이라는 인물은 실존 인물입니까?

    그리고 제가 가진 책들에는 9사단은 나오질 않는군요. 물론 개전시 기준입니다. 참고로 저 군단편제는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가 2001년에 발간한 라주바예프 625 전쟁 보고서에서 참조했습니다.
  • 슈타인호프 2013/05/16 17:38 #

    허민국은 저도 모릅니다. 기대하시는 것만큼 박식하지 않습니다;; 집에 가서 책을 찾아보면 혹 모르겠습니다만....

    9사단은 개전시에는 존재하지 않았고, 전쟁이 일어난 후에 일부 기간부대에 황해도 일대의 미소집 장정들을 선발하여 편성한 부대로 알고 있습니다. 낙동강 전투 관련 기록을 검색해 보시면 이 사단 일부 병력이 낙동강에 참전한 이야기가 나오고, 인천상륙작전 관련으로도 서울 방어를 위해 낙동강에서 다시 서울로 올라온 9사단 병력 이야기가 나올 겁니다.

    해당 부대 출신자가 쓴 "흑염"이라는 자전적 소설이 있습니다.
  • 措大 2013/05/16 21:12 #

    한국전쟁사를 살펴보니 8.15 부산해방명령의 실패 뒤 김일성이 재수립한 제5차 작전명령으로 제1군단 산하에 7, 9사단이 신편되었다고 나오는군요. (2권, p.5, 1970) 그렇다면 9사단은 개전 이후 1950. 8. 이전 어느 시점에 급조된 사단이라고 볼 수도 있을거 같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허민국은???
  • 2013/05/16 21:0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措大 2013/05/16 22:51 #

    정치적 의도가 있거나, 혹은 대한민국 정통성을 과도하게 홍보하는 집단이 아주 악의적으로 써먹고 있는건 분명하다고 봅니다. 다만 만든 사람은 누군지 몰라도 너무 엉터리로 만들어서... 공작 수준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요즘처럼 많은 정보가 공개된 시대에도 이런 식으로 반반 잘 섞어서 만들면 사실 추적하기는 꽤 어렵더군요. 더 문제는 이 리스트가 돌면 돌 수록 2차 3차 인용을 거치면서 이 리스트의 내용만이 확산되기 때문에 검색 같은 것으로는 해결이 안된다는 점이...

    덧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결국 냉전 이후 문서를 참조하는게 좋겠죠. 라주비예프를 참조한게 괜히 그런게 아니듯이.

    그건 그렇고...이런 정도의 댓글도 비밀글이 필요할 정도로 이글루에 쓸데없이 구글링, 캡쳐하는 무리들이 횡행하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 2013/05/16 22:24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措大 2013/05/16 22:52 #

    그런데 검색해보시면 멀쩡한 기사들도 이거 인용 중이죠 --

    별개로 위와 마찬가지로 이런 정도의 댓글도 비밀글이 필요할 정도로 이글루에 쓸데없이...슬픈 일입니다. 인신공격을 방치하니 악화가 양화를 구축해버리는듯.
  • 零丁洋 2013/05/16 22:40 # 답글

    사회주의는 인간의 의식을 현실적 조건의 반영으로 파악하기에 그렇게 도덕적으로 선명하지는 안하다고 봅니다. 물론 다소 친일의 경력이 있어도 이 프레미엄을 연장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 措大 2013/05/16 22:55 #

    잘 이해는 가지 않습니다.

    사회주의자는 유물론을 따르기 때문에 형이상학적 윤리 담론에서 요청하는 정언명령(이를테면 종교)을 충족시킬 수 없다는 말씀으로 이해하겠습니다만... 두번째 문장은...

    어쨌든 이 글은 사회주의나 사회주의자 비판이 아니라 왜곡된 역사적 사실이 버젓하게 통용되는 세태를 비판하는 것이지요.
  • 零丁洋 2013/05/17 11:15 #

    措大//1. 사회주의자는 문제의 원인을 개인이 아니라 사회 구조에 찾음으로 의외로 과거 잘잘못에 그렇게 집착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구소련의 나치에 대한 태도도 폭력적이긴 했어도 도덕적으로 분명하게 매듭을 짓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2. 비룩 친일의 경력이 있어도 친일로 이룩한 기반이 붕괴한 이상 도덕적 비난은 남아 있을지 모르나 현실적으로 문제될 것은 없다고 봅니다. 북한과 달리 우리 사회 친일문제는 아직도 현재한다는 것에 있다고 봅니다.
  • 코코볼 2013/08/28 12:38 #

    이사람은 북괴내각에 친일인사가 별로없었다는 글인데도 제대로 읽지도 않고 척수반사적으로 옹호론을 펼치고 있군요...
  • 우마왕 2013/05/16 23:00 # 답글

    이런 거 올리니 님 종북좌빨...
  • 措大 2013/05/16 22:57 #

    야구 블로거죠 ㅎㅎ

    오랜만에 뵙니다. 평안하셨는지요. 풍진 세상에 건강이라도 잘 챙기시길 바랍니다.
  • 우마왕 2013/05/16 23:01 #

    어머니 돌아가신지 한달도 채 안됐는데 평안할리가...
  • 措大 2013/05/16 23:11 #

    아...소식이 늦었습니다. 듣게 되어서 참 안타깝습니다.

    돌아가신 분의 명복을 빕니다. 평소 마왕님이 참 여러모로 고생하신 것 같은데, 수고 많으셨습니다. 뭐라고 이루 말할 수 없는 느낌입니다.
  • ㅇㅇ 2013/05/17 00:33 # 삭제 답글

    흠. 이승엽은 저 말도 안되는 명단에서 운운한 대화숙 외에도,
    식량영단 이사직을 맡은 경력이 친일논쟁에서 이야기되지 않던가요.
  • 措大 2013/05/17 01:16 #

    조선식량영단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친일파 조병상입니다. 식량영단 감사였거든요. 이 사람은 1891년생이고 경성부의원, 경기도의원을 수차례 연임했으며, 당연히 중추원 참의도 거듭 연임한 거물 중의 거물입니다. 즉 식량영단 감사라는 직위 자체가 아무나 하는게 아닌 거죠.

    이승엽은 1905년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나 인천고등상업학교 중퇴생이고 조선일보 기자가 되었으나 공산주의 활동이 문제가 되어 사직합니다. 1920년대 중후반에는 공산주의자였죠. 조병상이 한창 친일파로 커리어 쌓을 시점에 이승엽은 룸펜 공산주의자입니다. 대화숙은 그나마 사실일 수 있지만 이승엽이 조선식량영단 이사라는 것은 도무지 믿기가 어렵습니다. 조선식량영단 자체가 미곡수매/전매공사에 가깝거든요. 이승엽 정도의 자잘한 공산주의 전향자가 이사를 할 단체가 아닙니다.

    이사 15인, 감사 2인의 단체였는데 각 도 지부 감리관만 역임해도 친일파 딱지가 붙는 단체입니다. 이승엽이 할 수 있는 직위도 아니거니와, 만약 역임했다면 묻힐 수가 없죠.

    조선총독부관보 활용시스템을 살펴보면 금방 찾을 수 있을거 같은데 검색이 맛이 가서 -_-; (2010년부터 안되던가)
  • ㅇㅇ 2013/05/17 13:37 # 삭제

    식량배급조합이 식량영단으로 확대되고,
    이승엽은 조선식량영단의 중앙이사가 아니라
    인천 식량영단(식량영단 인천출장소)의 이사였던걸로 알고 있습니다.
  • 措大 2013/05/18 00:16 #

    ㅇㅇ// 이 명단 자체가 여러 모로 수상하기 때문에 이승엽도 결국 검증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봅니다. 식량영단이 각 도에 지부를 두었는데, 그 지부에 각기 이사가 있었는지도 검증해보아야 하구요. 인천 출장소라는 기관이 있었는가도 확증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결국 레퍼런스 싸움이 되는데 최소한 윗 글에서 확인한 부분은 레퍼런스를 달 수 있을거 같긴 하네요. 사실은 저 리스트 작성자가 레퍼런스를 제시해야 하는데, 그딴거 없이 말도 안되는 주장을 하는터라 부재증명을 강요당하는 셈입니다.

    일단 이승엽 같은 인물을 위해 부재증명을 해야 한다는게 아오...
  • 켈릭 2013/05/17 00:40 # 답글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ㅇㅅㅇ/
  • 措大 2013/05/18 00:16 #

    감사합니다.
  • 8비트 소년 2013/05/17 15:46 # 삭제 답글

    정통성 갖고 왈가왈부 하는 자체가 좌우 어느쪽이든 한심한것 같습니다.
  • 措大 2013/05/18 00:18 #

    그건 그렇죠. 대한민국도 막 걸음마 단계에서 영아살해의 끔찍한 원죄를 지니고 있지만, 그 후 몇십년의 역사 속에 공과가 교차하며 스스로의 정통성을 드높이는 여러 성과를 거뒀으니까 말이죠.

    다만 별개로 정치적인 이유로 어처구니 없이 역사를 비트는 공작은 배격되어야 마땅합니다.
  • bergi10 2013/05/17 23:57 # 답글

    오호.... 그렇군요.

    잘 읽었습니다.
  • 措大 2013/05/18 00:18 #

    감사합니다.
  • 코스모폴리탄 2013/07/15 17:56 # 삭제 답글

    저도 저 리스트에 의문을 품고 자료를 찾다가 발견한 매우 공들인 글을 보고 갑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볼수 있는것 들을 다른사람들은 보지 못할까요. 참으로 답답합니다.
    자료 찾고 정리하시느라 수고 많으셨구요.
    님 같은 분이 계셔서 아직 대한민국이 건강하다라는걸 느끼고 갑니다.

  • 유도명인황장엽 2013/07/31 14:13 # 답글

    이승엽의 경우는, 제목은 생각이 안 나는데 오래 전에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낸 책에서도 정백,조일명과 함께 좌익 친일파로 수록됐었습니다. (그 단체는 친일 경력이 있는 것만으로도 "친일파"라고 하는 곳이라...)
    그리고 해방정국 조공-남로당 내에 정백,이영 같은 박헌영 반대파들이 "우리한테는 일제 말기에 운동 안하고 친일했다고 유휴분자라고 비난하면서 똑같은 이승엽이는 자기 사람이란 이유로 감싸고 2인자까지 해먹는다"고 불만이 많았죠...

    제 생각에는 이승엽이나 한민당에서 친일로 까이는 수많은 거물급 정치인들이나
    "친일파"라고 불릴 정도는 아니고 일제말기 친일 행위로 경력에 오점 남긴
    민족주의자,공산주의자라고 보고 싶네요... 이승엽은 투옥 경력이 6년이나 되더군요
    친일파라고 불릴만한 사람들은 박춘금,한상룡처럼 일제강점기 전 기간에 걸쳐서 친일행위 했던 사람들이라고 보구요
  • 참치맨 2013/08/14 00:07 # 삭제 답글

    와 북한의 친일파를 주장하면서 왜 북한의 국민배우라는 심영이나 국민가수인 백년설을 빼먹을수있지???
    또한 이승엽이나 한희진 같은 이들은 민족문제 연구소 704인에 들어가죠.. 백년설이나 심영같은이도요..
    실은 북한내에 친일파들이 없는 건 아닙니다..하지만 탄백이라는 형태로 잘못을 저지른 것에 대헤 민족에게 고하고 사죄한다라고 말을 하고 있고 그나마 과학기술이나 문화 예술분야 등 일부분이며 친일이나 독립운동가들을 밀고했거나 친일사법인들은 아예 숙청해버리죠...
    결국 남은 건 한희진같은 관리거나 이승엽같은 대화숙출신들인데 이 사람들은 6.25이후 박헌영과 더불어 숙청됩니다..
    또 홍명희같은 경우 여운형과 더불어 친일했다는 주장이 있지만 그 근거가 뚜렷하지 않죠..오히려 악의적으로 왜곡되엇죠... 여운형의 동생인 여운홍이 친일행위를 하였고 홍명희 부친 또한 그래서 왜곡하지 않았나 싶네요..
  • 꼬추 2013/08/15 21:56 # 삭제 답글

    http://mirror.enha.kr/wiki/%EB%B6%81%ED%95%9C%EC%9D%98%20%EC%B9%9C%EC%9D%BC%ED%8C%8C

    수상: 김일성(북로당) -독립운동 경력 유
    부수상: 박헌영(남로당) - 독립운동 경력 유 · 사회주의 항일운동 관련 다수 투옥.
    부수상: 홍명희(민주독립당) - 독립운동 경력 유. 신간회, 임꺽정.
    부수상: 김책(북로당) - 독립운동 경력 유, 동북항일무장투쟁.
    국가계획위원장: 정준택(북로당) - 서흥광산 지배인, 소련 군정에 의해 임명.
    민족보위상: 최용건(민주당) - 독립운동 경력 유, 항일무장투쟁.
    국가검열상: 김원봉(인민공화당) - 독립운동 경력 유, 의열단.
    내무상: 박일우(북로당) - 독립운동 경력 유, 조선의용군 부사령관. 팔로군.
    외무상: 박헌영(겸임) - 독립운동 경력 유.
    산업상: 김책(겸임) - 독립운동 경력 유.
    농업상: 박문규(남로당) - 독립운동 경력 유. 경성제대반제운동사건에 연루되어 일본 경찰에 체포 경력.
    상업상: 장시우(북로당) - 독립운동 경력 유. 일제시대 국내파 조선공산당(조봉암이 창단 멤버)
    교통상: 주영하(북로당) - 독립운동 경력 유. 일제시대 국내파 조선공산당(조봉암이 창단 멤버)
    재정상: 최창익(북로당) - 독립운동 경력 유, 항일 무장투쟁.
    교육상: 백남운(근로인민당) - 독립운동 경력 유. 1940년 투옥. 마르크스 경제학자
    체신상: 김정주(청우당) - 불명, 소련 대사.
    사법상: 이승엽(남로당) - 독립운동 경력 유, 그러나 후에 변절. 박헌영 최측근. 1937년 조선공산당 사건으로 투옥.
    문화선전상: 허정숙(북로당) - 독립운동 경력 유, 1929년 광주학생운동 투옥.
    노동상: 허성택(남로당) - 독립운동 경력 유. 모스크바 유학. 노동조합운동가,
    보건상: 이병남(남로당) - 독립운동 경력 유. 소아과의사, 1942년 조선민족의 우수성 주장하다 경성제국대학교에서 해임.
    도시경영상: 이용(신한민족당) - 독립운동 경력 유. 헤이그 특사 이준열사의 장남. 상해임시정부 동로군 사령관. 임정정부 의정원 의원.
    ................해방후 초대 인민위원장, 도시경영상, 사법상, 무임소상 역임.
    무임소상: 이극로(건양회) - 독립운동 경력 유.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 투옥, 해방후 석방.

    일단 이게 맞는듯한데 독립운동가라는 표현은 부적절한거같네요. 항일운동가라는 표현이 맞고 왜냐면
    우리하나는 좌익항일운동가를 독립운동가로 볼것이냐의 논쟁이 있습니다.
  • 고은아 2016/10/01 20:19 # 삭제 답글

    북한의 초대 내각이 친일파 의혹이나 친일행적이 있는 직계 가족을 두고 있다는 글인데 파고 들면
    복잡하단 글이네요 그렇다고 북한의 초대 내각이 절대 친일파라 할 수 없다는게 글을 읽은 결론입니다
    정확하게 객관적으로 이 글쓴 분 말대로라면

    왜냐면 이승만 내각은 그야말로 임시정부출신들로 내각이 거의다 채워졌기 때문에 정통성과 명예 면에서는 어쨋건 북한 내각과의 비교에서 친일파 논란 자체가 없죠

    중요한건 이승만이 끌어모은 인재풀 2천명에 대해서 친일파 논란이 있는건데

    윗님의 글을 보면 오히려 이승만이 초대 건국때 활용한 인재풀들이 적극적 악질적 친일파들이
    다수가 아닌 대다수가 일제가 나라였던 식민조선에서 그나마 약간의 고급 행정 기술의 언저리에서
    배웠던 그나마 엘리트 층들에 대해서는 저보다 더 친일파란 말을 하기가 어렵단 걸 반증하네요

    친일파 친일파 하지만 실제 북한내각의 친일파 의혹 인물들을 파보면 결국 저런식으로 밖에
    결론이 안 날 정도니 이걸 거꾸로 뒤집으면 이승만 내각과 남한의 인재풀 활용에
    친일파 딱지를 붙이는건 말이 더욱더 안된다는 역설이 되는군요

    저정도 일제시대내의 타이틀을 붙이고 있던 자들 조차 인척내에 친일파와 독립운동가가 공존했다는
    이유로 친일파라 보기 어렵다 란 말을 한다면

    이승만 내각과 남한 초기 정권하의 인재풀에 대해 친일파중용했다고 비난한다는것 자체가

    말도 안되는 소리라는 뚜렷한 반증을 보여주는 글이 되버렸네요

    이 글 쓴분은 북한내각의 친일파 여론이 시간이 흘러 꼼꼼이 따지면 애매모호한 부분이 많다는
    부분을 강조하시는데 그게 바로 35년 일제식민지화 즉 일본자체가 조선의 국가가 되어있던 상황이기에 그부분을 간과하면 그 일제치하의 조선인들 전부가 친일파란 주장을 강하게 확인시키는 글이
    되니까요
  • 고은아 2016/10/01 20:21 # 삭제 답글

    맨윗글의 표현중 절대 친일파가 아니라고 할수는 또 없다는게 글은 읽은 결론입다 로 수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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